블로그 이미지
하루, 글. 그림. 영상매체. 표현을 도와주는 기기들. 도전 중. 동화다아아
    동화다아아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76)
    잡담 (1)
    IT 기기-리뷰&뉴스 (7)
    리뷰 - 도서 (1)
    리뷰 - 영상 (0)
    리뷰 - 그림/음악 (1)
    내장형 하드웨어 (163)
    Total
    Today
    Yesterday
     

    PC의 계보와 역사


    (1) 세계 최초의 PC 에니악에서 PC까지


    찰스 바베지의 해석기관과 펀치카드의 꿈은 호레리스의 작표기, 브리태닉 계산기 등을 거치며 마침내 194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존 모클리와 프레스퍼 에커트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컴퓨터인 에니악(ENIAC)으로 완성되었다. 진공관을 사용해서 건물 한 층을 다 썼던 큰 덩치의 에니악 이후 컴퓨터는 에드박(EDVAC) 오드박(ORDVAC)을 거치면서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BRLESC-II 컴퓨터부터는 크기가 더욱 작아졌으며 고속의 카드 리더기가 전면에 배치되었고, 고속의 라인 프린터도 배치되었다.

     

     

    * 세계 최초의 컴퓨터인 ENIAC. 요즘의 컴퓨터와는 달리 건물을 점유할 정도로 엄청난 부피를 자랑한다.

     

    * 최초의 네 컴퓨터별 부품의 크기를 보여주는 사진. 왼쪽부터 ENIAC 기판, EDVAC 기판, ORDVAC 기판, BRLESC-I 기판이다. ENIAC에 비하면 BRLESC-I의 기판은 그야말로 초미니 기판인 셈이다.


    (2) 개인용 PC

    메인프레임이라고 부르는 대형컴퓨터 중심으로 발전하던 컴퓨터가 큰 변혁을 맞이한 것은 PC(개인용 컴퓨터)의 출현부터다. 리 펠젤스타인과 에프렘이 함께 만든 메모리공동체에서 톰스위프트 단말기를 만들었는데, 이후 70년대 해커들의 최고 모임인 'Homebrew클럽'에서 만난 해커들이 톰스위프트 단말기의 표시 부분을 개량하고 입력 장치를 개량하여 '솔' 컴퓨터를 만든다. 그리고 솔 컴퓨터를 원형으로 하여 1975년에 미츠사에서 '알테어(Altair)키트'를 내놓는다. 8080 MPU와 전원공급기, 패널, 256바이트의 메모리로 구성된 알테어 키트는 완제품이 아닌 조립부품이라 사용자가 케이스 등을 만들어 조립해야 했다. 기계어를 할 줄 아는 고급 전문가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그러나 개인이 컴퓨터를 소유할 수 있게 된 시발점이 되었다.


    마침내 Homebrew에 가입한 해커인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에 의하여 나무 합판에 기판을 붙여서 만든 세계 최초의 PC인 애플이 탄생한다. 처음에는 애플이 대량으로 생산된 것이 아니고 몇 개씩 수작업으로 생산되었으나 인기를 끌자 대량 생산되었고, 이때부터 일반인도 완제품인 PC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솔이나 알테어가 아닌 애플을 최초의 PC로 기록하는 것이다.

    * 세계 최초의 PC인 애플 컴퓨터


    8비트 컴퓨터인 애플이 성공하면서 Zilog사의 Z80 CPU를 장착한 MSX와 같은 경쟁상품이 등장했다. 한국에서도 삼보에서 8비트 기종을 생산하면서 컴퓨터 전문기업으로 성장했으며, 대우전자 삼성전자 등에서 MSX 호환 기종을 판매하면서 '8비트 키드'라고 부르는, 어려서부터 컴퓨터를 만지며 자란 컴퓨터 세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애플은 이후 모스테크놀로지의 6502 CPU를 장착한 AppleII를 내놓으면서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를 유지한다.


    1) 애플 컴퓨터

     스티브, 워즈니악의 애플(Apple) I 탄생. 스티브 잡스의 차고에서 수공업 방식으로 생산된 애플 I은 하나의 마더보드(motherboard)로만 구성돼 있었으며, 모토로라(Motorola) 6502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비디오 터미널을 탑재하고 있었다. 당시 500달러의 가격에 판매된 애플 I은 약 200대가 팔리면서 1977년, 애플 컴퓨터(Apple Computer)의 탄생을 가져온다.


    1977년 애플 컴퓨터는 애플 II를 출시, 대량 생산/판매에 들어간다. 당시 애플 II는 전기 회로가 '인쇄'된 마더보드, 모토로라 마이크로프로세서, 비디오 카드, 모니터, 사운드 카드, 키보드, 게임용 조종기, 카세트테이프 저장장치(이후 5.25인치 디스크 드라이브로 바뀜), 파워 서플라이(power supply) 등이 포함돼 오늘날 PC의 모든 기능과 구조를 완벽히 갖추고 있었으며 특히 애플 II를 TV 수상기에 연결해 화려한 컬러 그래픽까지 볼 수 있었다. 또한 애플 II에는 시스템 도구와 BASIC 프로그래밍 언어와 같은 기본적인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이 설치돼 있었다. 


    오늘날 'PC의 아버지'로 인정받고 있는 애플 II는 출시되자마자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78년 애플 II를 위한 워드프로세서 소프트웨어 "일렉트릭 펜슬(Electric Pencil)," 그리고 최초의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 "비지칼(VisiCalc)"이 출시되면서 본격적인 PC의 대중화 시대가 도래한다.

    [애플 컴퓨터의 개발자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 좌). 우측은 현재 애플 컴퓨터의 CEO, 스티브 잡스(Steve Jobs). 잡스가 워즈니악보다 더 유명하긴 하지만, 원래 그는 컴퓨팅에 문외한으로 애플 컴퓨터를 개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자신의 차고를 워즈니악에게 빌려 준 것만 빼고.)]

     [애플 I의 위용. 사진에서 보듯, 애플 I은 가내 수공업으로 만들어진 '아마추어 컴퓨터'였다. 대량 생산 시스템도 갖추지 못한 채, 납땜질과 톱질, 망치질로 만들어진 이 컴퓨터는 그러나, 세계 최초로 시장에서 성공한 개인용 컴퓨터 - PC로 기록된다.]

    [애플 I의 성공에 고무된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은 애플 컴퓨터라는 회사를 설립, 대량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애플 II를 시장에 내놓는다. 이후 1980년대 중반, IBM이 PC 시장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애플 II는 'PC의 대명사'로 불리며 컴퓨팅 역사상 가장 성공한 하드웨어 제품 중 하나로 기록된다.]


    2)

    개요MSX는 아스키의 니시 카즈히코가 마이크로소프트 일본 사업부에 있을 때 고안했다. 당시 일본전기의 PCx8 시리즈, 세가의 SC-3000, 코모도어의 코모도어 64 등 제각각의 규격으로 퍼스널 컴퓨터를 만들어 서로간의 호환성에 문제가 많았는데, 이를 해결할 대안으로 어떤 회사에서 제작된 컴퓨터라도 소프트웨어 호환성이 있는 단일 표준을 꿈꾸었다. 결국 그의 영향으로 일본의 아스키사와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공동으로 제정한 통일 규격 Machines with Software eXchangeablity[1](이하 MSX)가 탄생했다. 때마침 비디오 카세트 레코더 표준인 VHS의 성공으로 인해 JVC, 필립스, 파나소닉, 캐논 등의 신흥 전자 회사들이 MSX를 만들기로 하면서, MSX는 전 세계적으로 판매되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사는 미국과 유럽에서의 MSX 판매 부진으로 인해 1985년 MSX2 규격을 만들고는 MSX 개발에서 손을 떼었다. 이로 인해 MSX2+ 규격부터는 거의 일본식 컴퓨터가 되어갔으며, 최종 후속 기종인 MSXturboR에서는 8비트 PCM과 FM 사운드, MIDI 인터페이스를 기본 사양으로 넣기도 하였으나 더딘 하드웨어 발전과 IBM 호환 PC 및 가정용 게임기와의 경쟁에 밀려 결국 MSX는 규격 제정 이후 8년 만에 사장되고 말았다.


    특징

    MSX 규격은 여러 범용 부품으로 구성된 것이 주요 특징이다. CPU는 3.58MHz로 작동하는 자일로그 Z80A이고 그래픽 칩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TI-99/4A와 콜레코비젼에서 사용한 적이 있었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TMS9918이며 사운드 칩은 제너럴 인스트루먼트 AY-3-8910이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제작한 MSX 베이직을 기본 운영체제로 두었다. 선택 사항으로 데이터 카세트 레코더, 퀵 디스크 드라이브,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등을 설치 할 수 있고,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설치 할 경우 디스크 BASIC이 추가로 내장되며, MS-DOS를 기반으로 제작한 MSX-DOS를 사용할 수 있다. 또한 MSX의 가장 큰 특징은 롬 카트리지를 주요 매체로 사용하는 것으로, 기존에 사용하던 데이터 카세트나 플로피 디스크 등에서의 데이터 오류 가능성를 방지했다는 점에서 유리했으나 화려한 그래픽으로 사무용 컴퓨터에 비해 게임 소프트웨어가 많아 MSX가 게임기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실제로 대우전자에서는 MSX에서 키보드를 제거한 가정용 게임기 재믹스를 판매하기도 하였다.


    이후 메모리와 비디오 기능이 강화된 MSX2가 등장하였다. 무엇보다도 MSX2의 발전에 기여한 것은 1980년대 말 ~ 1990년대에 발매된 메가게임(メガゲーム)[2]의 등장이었다. 이 시기가 8비트 컴퓨터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었는데 세운상가는 물론, 동네 곳곳에 게임 롬팩을 판매, 교환해주거나 대여해주는 게임 상점이 등장하였으며 비디오 대여점에서도 게임 롬팩을 대여해주기도 하였다. 컴퓨터 학원에서 주로 쓰던 컴퓨터와 컴퓨터 학습 등의 잡지에서 주로 다루었던 컴퓨터는 애플 II와 더불어 MSX가 대부분이었다. 사운드 측면도 보강되었는데 파나소닉에서 FM 음원의 사운드카드인 FM-PAC이 나왔고, 코나미에서는 SCC라는 음원을 사용하여, 많은 게임 팩에 SCC 음원이 들어있었다.


    그 후 1988년 비디오 강화와 MSX-MUSIC을 내장[3]한 MSX2+와 1990년 PCM, MIDI와 고속 CPU를 내장하여 16비트 PC로의 도약을 시도한 MSXturboR이 각각 발표되었으나 IBM 호환 PC에 밀려 사라지게 된다. 한국에서는 IBM PC를 교육용 컴퓨터로 채택함으로써 대우전자의 MSX2 기종들을 끝으로 정식 지원이 중단되었으나, 나중에 대우전자에서 나온 MSX 카드 및 재믹스 터보가 MSX2+와 유사점이 있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3. IBM-PC의 등장과 인텔의 펜티엄까지

    그러나 애플이 주도하던 PC 시장은 오래 가지 못했다. IBM이 IBM-PC라는 이름으로 PC 시장에 경쟁자로 나서면서 시장 판도가 바뀌었다.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PC(Personal Computer)라는 말은 IBM-PC가 등장하면서부터 사용한 말로, 원래는 IBM의 개인용 컴퓨터를 뜻했으나 지금은 보통명사가 됐다. IBM은 애플에 대항하기 위해 하드웨어 공개와 운영체제의 아웃소싱을 채택했다. 그 결과 HP, DELL, 컴팩 등 수 많은 IBM 호환PC 업체를 만들어냈으며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룡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바탕을 제공했다. 정작 IBM은 호환업체에 밀려 PC산업에서 철수하고 만다.


    1) IBM PC

    IBM PC™는 1981년 미국의 컴퓨터 정보기기 전문 업체인 IBM사(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 Corporation)가 선보인 컴퓨터이다. IBM PC 호환기종의 모체이고, 모델명은 IBM 5150이다. IBM PC의 경쟁상대는 애플컴퓨터의 매킨토시였다.


    1980년대 초반에 IBM이 PC를 발표하였는데 흑백 모니터에 해상도도 떨어지는 초라한 컴퓨터였다. 컬러 화면에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가진 매킨토시와는 비교하기 힘들만큼 초라하였지만 매킨토시보다 값이 저렴하였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비싼 매킨토시 대신 PC를 사용하였고 IBM은 PC 내부를 공개하였기 때문에 많은 업체들은 PC에 관련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었다.

    (IBM PC 5150, 1981년 8월 12일 발매, 1986년 4월 2일 단종)


    IBM은 인텔(Intel)이 생산한 8088 CPU를 장착하고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만든 PC-DOS(=MS-DOS)를 운영체제로 하는 IBM-PC인 XT(eXtended Technology)를 1981년에 발표한다. XT는 16비트 PC라고 발표되었으나 온전한 16비트 CPU인 인텔 8086 CPU 대신 가격이 저렴하고 외부 클록이 8비트로 설계된 8088 CPU를 채택했다. 반쪽짜리 16비트 PC인 셈이다. 이후 인텔의 CPU인 80286을 채택한 온전한 16비트 PC인 AT(Advanced Technology)가 1984년 발표되면서 본격적으로 16비트 PC 시대를 연다.

    모델 이름

    모델 번호

    도입 날짜

    CPU

    기능

    PC

    5150

    1981년 8월

    8088

    플로피 디스크나 카세트 시스템 (외장 하드 드라이브 선택 사항])

    XT

    5160

    1983년 3월

    8088

    내장 하드 드라이브가 표준으로 도입된 최초의 IBM PC.

    XT/370

    5160/588

    1983년 10월

    8088

    시스템/370 메인프레임 에뮬레이션

    3270 PC

    5271

    1983년 10월

    8088

    3270 터미널 에뮬레이션 추가

    PCjr

    4860

    1983년 11월

    8088

    플로피 기반의 가정용 컴퓨터

    PC

     포터블

    5155

    1984년 2월

    8088

    플로피 기반의 포터블 컴퓨터

    AT

    5170

    1984년 8월

    80286

    중간 속도의 하드 디스크

    컨버터블

    5140

    1986년 4월

    8088

    마이크로플로피 노트북 포터블

    XT 286

    5162

    1986년 9월

    80286

    느린 하드 디스크를 장착하였지만 메인보드에 장착된 메모리의 대기 상태가 0이다. 이 6 MHz 속도의 컴퓨터는 대기 상태가 0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8 MHz AT급 컴퓨터보다 더 빨랐다 (평면적인 메모리를 사용할 때)

    계속해서 IBM은 인텔의 32비트 CPU인 80386 CPU와 80486 CPU를 장착한 제품을 출시한다. 처음에는 386도 AT로 불렀으나 기존의 AT와 구별이 어려워지자 CPU 모델 이름을 딴 286 PC, 386 PC, 486 PC 등으로 부르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386 컴퓨터, 486 컴퓨터는 인텔의 CPU 제품이름인 80386, 80486을 기준으로 부르는 호칭인 것이다. 이후 CPU 모델이름으로 컴퓨터 기종을 구분하게 된다.


    PC 시장이 성장하면서 인텔은 크게 성장했고 호환 CPU 업체들이 인텔에 도전장을 내기 시작했다. AMD, Cyrix, NexGen, Ti(Tesas Instrument), DEC, 센토 테크놀로지, 라이즈 테크놀로지 등이 인텔 호환 CPU를 생산하면서 인텔을 추격했으며, 사이릭스의 Cx486, Cx586과 AMD의 80486DX4 등은 인텔을 위협할 정도까지 성장했다.


    도전자의 추격을 뿌리쳐야 하는 인텔은 숫자로 된 CPU 이름이라 상표로 보호받지 못하는 x86 시리즈 이름을 포기한다. 인텔은 80486 CPU의 후속제품 이름을 80586이 아닌 '펜티엄(Pentium)'으로 정하고 1993년에 발표한다. 펜티엄은 희랍어로 5를 뜻하는 'Pent'와 Intel의 'I', 작은 기계를 뜻하는 'um'이 모여서 만들어진 합성어다. 이 합성어는 상표는 등록된 것이므로 상표 보호를 받는 이름이다. AMD 등이 펜티엄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더불어 인텔은 'Intel Inside'라는 판매 전략을 더욱 적극적으로 시행한다. 인텔 인사이드 전략은 인텔의 CPU를 장착한 시스템에 'Intel Inside'라는 로고를 부착할 수 있도록 하는 판매 전략이다. 이 두 가지 전략이 성공을 거두면서 사람들은 펜티엄과 인텔 인사이드 로고가 없는 컴퓨터는 성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로써 호환 업체의 추격에 시달리던 인텔은 호환업체의 추격권에서 크게 멀어졌을 뿐만 아니라 전문가나 알던 인텔이라는 회사 이름을 일반인에게도 알리면서 브랜드 가치가 크게 성장한다. 화려한 펜티엄 컴퓨터 시대를 연 것이다.


    인텔은 펜티엄 이후에도 1995년의 펜티엄프로, 1997년의 펜티엄MMX와 펜티엄II, 1999년의 펜티엄III, 2000년의 펜티엄4까지 계속해서 후속 모델을 발표한다. 이에 따라 컴퓨터 기종 이름도 펜티엄 컴퓨터에서 펜티엄4 컴퓨터까지 발전한다.


    (3) 인텔 펜티엄과 AMD의 애슬론의 경쟁은 코어2와 페넘으로

    그 사이에 많은 인텔 호환업체들이 망하거나 인수 합병되면서 사라졌다. 그러나 끝까지 인텔을 물고 늘어진 AMD는 AMD의 제 7세대 CPU인 코드명 K7을 애슬론(Athlon)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출시하면서 CPU 시장을 다시 한 번 뒤흔든다. 1999년 6월 23일 정식으로 출시된 애슬론은 뛰어난 성능으로 인텔의 후발주자라는 AMD에 대한 인식을 바꿔주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1GHz CPU를 인텔보다 먼저 발표함으로써 속도 면에서도 인텔을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컴퓨터 시장은 인텔의 펜티엄 계열 CPU를 장착한 펜티엄 컴퓨터와 AMD의 CPU를 장착한 애슬론 컴퓨터로 구분되었으며 두 CPU 기업의 대결 구도로 바뀌었다.


    인텔의 '펜티엄4'에 대항한 AMD의 '애슬론XP', 최악의 발열과 소음으로 악명이 높았던 인텔 펜티엄4 '프레스캇(Prescott)'에 대항한 AMD의 '애슬론64' 등이 인텔 CPU보다 성능이 우수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전세는 점차 AMD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그 결과 인텔은 십 수 년을 사용하던 펜티엄이라는 브랜드를 포기하고 코드네임 요나(Yonah)를 '코어2(Core 2)'라는 이름으로 발표한다. 인텔은 코어2 제품으로 '코어 듀오(Core Duo)'라는 제품을 발표한다. 이후 코드이름 '콘로(Conroe)'인 데스크탑 CPU와 코드이름 '메롬(Merom)'인 모바일 CPU를 '코어2 듀오' '코어2 익스트림' 등의 제품군으로 발표한다. 최근에는 쿼드코어 모델인 '코어2 쿼드'를 발표했으며, 이어 차세대 CPU로 45나노미터 공정을 도입할 코드이름 펜린(Penryn)과 울프데일(Wolfdale) 네할렘(Nehalem) 요크필드(Yorkfiled)에 이어 샌디브릿지(sandy bridge)까지 발표하고 있다.

    이에 맞서 AMD 역시 AMD를 성장시킨 브랜드인 애슬론을 버리고 최초의 네이티브 쿼드코어 CPU인 코드이름 바르셀로나(Barcelona)를 페넘(Phenom)이라는 새로운 상품명으로 출시했고 그에 이어 현재 불도저라인업의 출시를 준비 중이다.


    [참고자료]

    IT문화원 2기 블로그: PC의 계보와 역사.

    (http://www.dal.kr/blog/2007/10/20070813_prosumer3.html)

    전자식 디지털 컴퓨터의 역사.

    (http://www.pcclassic.com/hardware/history/view_history?history-1)

    개인용 컴퓨터의 역사를 한눈에. (http://hightouch.kr/4)

    [컴퓨팅의 역사]1976년: 애플 컴퓨터와 PC 역사의 개막

    (http://www.linxus.co.kr/main/view_post.asp?post_seq_no=23686)


    Posted by 동화다아아
    , |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